(6회)
안창호의 집은 파차파 애비뉴(현 커머스 애비뉴)에 있는 리버사이드지방회 공립관에서 한 블록쯤 거리, 역에서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몇 달 전, 오렌지농장을 가진 한 미국인 집에 머무르며 집사로 일하다가 공립협회 규모가 커지면서 할 일이 많아지자, 집사 일을 더는 감당하기 어려워 그만두고 나오면서 새로 마련한 집이다.
아직은 아이 하나, 이제 곧 돌이 되는 장남 필립(必立)을 품에 안은 이혜련 여사가 남편과 함께 들어서는 두 사람을 상냥한 미소로 반겨 주었다.
"아유, 집이 누추해서 이를 어째, 어서들 오셔요."
"아이고, 여사님. 이거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됐습니다. 이 녀석, 인사도 하네."
"실례합니다…그래, 안녕…오, 그래그래…"
두 사람의 시선이 엄마를 따라서 고개를 까닥까닥 앙증맞게 인사하며 방글거리는 필립에게 쏠리자 안창호가 아이를 어르며 크게 웃는다.
"하하하…이 녀석 이름은 기필코 독립이라, 필립이라고 합니다…짐들은 저쪽으로 서재로 옮깁시다."
저녁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다시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잠시 후 이 여사가 쟁반에 한가득 오렌지를 들여왔다.
"저이가 아까 낮에 전에 일하던 농장에 가서 한 바구니 얻어온 거랍니다. 드시면서 편히들 말씀 나누셔요."
흔치 않은 대접에 수길과 양주은은 어쩔 줄을 몰랐다.
"이렇게 만나만 주신 것도 어딘데 이렇게까지…이거야 원…송구스럽습니다."
"무슨 말씀을, 제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를 만나러 예까지 이렇게 먼 길 오셨는데 제가 오히려 송구하지요. 자, 드십시다. 자네도 이리 당겨 앉고."
안창호가 수길에게 오렌지를 하나 집어 주었다.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는 수길의 모습을 바라보던 양주은은 또 속으로 생각했다. '누군들 여기서 괴롭지 않을까만 누군들 여기서 불쌍하지 않을까만…저놈 참 안쓰럽구나…'
"아까 자네가 울면서 말하기 전까진 전혀 몰랐네. 깜짝 놀랐어. 공부는 하고 싶은데 도저히 형편이 안 돼서 괴롭단 말은 몇 번 했어도, 집안 얘긴 딱 한 번 했었지 아마? 내 기억엔 나랑 처음 만났을 때 같이 밥 먹으면서, 아버지 계시고 동생 하나 있고 어머니는 하다 말았던 거 같은데? 하긴 나도 더는 안 물어봤고, 없는 질문에 대답이 있을 리 없고, 자넨 또 술은 마셔도 늘 과묵한 사람이라…그래도 나 섭섭해!"
사람 좋은 양주은이 익살스러운 말투로 새삼스럽게 수길을 위로한다.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럼, 그럼, 내 알지. 우리가 워낙 팍팍하게 일만 하고 사느라고 서로 속 깊은 얘긴 별로 할 새가 없었지. 그나저나 앞으로 자리 잡게 되면 집에 편지는 꼭 하소."
안창호도 한마디 거들었다.
"여태까지 집에 편지를 한 번도 안 했구나? 그래선 안 되지, 어떻든지 아버님이시고 반 핏줄이긴 해도 동생까지 있는데, 안부만큼은 반드시 여쭤야지."
"마음은 늘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그동안 사는 게 영 말씀이 아니라서…"
"어허, 그건 핑계야. 아버님께서 얼마나 염려하시겠어."
안창호의 나무람에 수길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분 말씀 명심하고 바로 편지 쓰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그런데 자넨 어떤 생각으로 어떤 공부를 그렇게 하고 싶어 하나?"
그렇게 안창호가 수길에게 한 공부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세 사람의 긴 대화는 밤을 온통 하얗게 지새웠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더하여 세계사 일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한 법이고, 그래야만 또 우리는 우리의 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법이고, 또한 그런 가운데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식견을 가질 수 있는 법이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멀리 가까이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로 똘똘 뭉쳐서 우리의 힘을 기른다면 일본의 침탈을 막을 수 있고 자주독립도 가능할 터, 그래서 우리는 산 공부가 필요하네. 수길이 자넨 의지가 굳으니 잘하리라 믿네. 공부는 여기서 우리가 운영하는 야학을 먼저 몇 달 다니고, 미국 정규학교는 그 뒤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알아보도록 하세. 일자리도 내가 직접 알아봐 줌세. 그리고 양 선생, 일본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려면 병선이나 대포 등이 있어야 한다는 선생 말씀에 저 역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나 그에 우선하여 당장 필요한 건, 우리의 대동단결입니다. 도와주십시오…"
(계속)
참고:
동포의 대동단결을 강조한 도산 선생의 연설 하나/총회장 안창호 씨가 연설
이재명 의사가 하와이에서 미 본토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 1906년 4월 5일 샌프란시스코(상항)지방회에서 있었던 공립협회 창립 1주년 기념행사(연환회)에서 도산 선생이 했던 연설이다. 이 의사가 또 상당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로 그 5일의 연설 내용을 대강의 개요로 요약한 공립신보 14일 자 6면~7면 연설기사 전문을 이미지와 함께 올린다. 특보/별보(5면~8면)의 세 번째 꼭지다.
△공립신보 1906년 4월 14일 자 특보/별보의 6면 2단~7면 1단∥이미지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검색어: 안창호 연설/연속간행물 공립신보 1번☜)
총회장 안창호 씨가 연설하니 그 대개는 여좌(如左)함
<오늘 이같이 화초와 채색으로 집을 화려하게 단장하고 노래를 화창하여 즐기는 것은 즐거워할 만한 까닭이 있건만은 만일 외국사람들이 구경할 것 같으면 우리의 속은 모르고 응당 우리를 비웃고 뇌근이 썩어진 인물이라 (****/손가락질?) 하리니 슬프다. 그 사람들이 비웃고 비방하드래도 대답할 말이 없도다.
우리의 나라히(나라가) 경복(傾覆)하고 우리의 동포가 수화(受禍)에 빠져서 자유를 잃고 의식(衣食)도 넉〃지 못하며 받는 것은 천대와 욕이오, 우리의 부모 동생은(同生/同氣) 다 원수의 손 아래서 통곡하는데, 우리가 이같이 노는 것을 어찌 비웃지 아니하리오.
그러나 우리가 오늘에 즐기는 연고는 이날이 우리 협회가 창립된 날이라 함이라. 어찌하여 우리가 협회 창립된 날을 당하여 즐겁다 하느뇨. 대저 우리가 고국을 이별하고 수만 리 대양을 건너 원방에 온 것은 여러 가지 뜻이 있으나 그중에 제일 크게 같이 품은 뜻이 있으니 그 뜻은 우리나라히 미개하고 민멸(泯滅)하는 것을 분히 여겨 미국에 문명하고 부강한 것을 배우고 본받아가지고 우리나라도 미국과 같이 문명 부강하게 하자 함이라.
그럼으로 우리나라 동포들 중에 혹은 말하기를 우리가 문명한 미국과 같이 병선과 대포를 만들자 하며 혹은 문명한 미국과 같이 집을 잘 짓고 길을 잘 닦자 하나 나는 이 모든 것을 다 좋아하고 심지어 화초동산 하나이라도 문명한 미국과 같이 만들고 싶으고 무엇이던지 우리나라에 없는 좋은 것은 다 배우며 본받고 싶은지라. 우리 무리가 불가불 힘써 공부하여 배울 것이라.
그러나 본받고 배우는데 먼저 하고 후에 할 차서(次序)와 경하고 중한 분간이 있으니 우리가 미국에 문명 부강을 배우려면 무엇을 먼저 할 것이며 무엇을 더 중히 여길 것이뇨. 우리가 만일 무슨 좋은 화초를 구하자면 아름다운 잎과 향그러운 꽃나무에서 다만 꽃이나 잎사귀만 취하면 잠시는 좋으나 얼마 못되어 마르고 다시 번성치 못할지라. 먼저 그 나무의 뿌리나 씨를 취하여 심으면 꽃과 열매가 그로 말미암아 나고 또한 번성할 터이니 불가불 먼저 뿌리와 씨를 취하여 심을 것이라.
이와 같이 우리가 미국에 문명과 부강을 구하자 하면 또한 문명과 부강에 뿌리와 씨를 구할 것인데 문명과 부강에 씨는 무엇이뇨. 우리 협회의 목적이니 같은 나라 인종이 서로 보호하자는 뜻으로 단합함이라. 작년 이날에 그 좋은 씨를 우리 동포가 스스로 구하여 심었는데 이제 그날을 다시 만나니 남은 웃고 비방하드래도 우리는 기뻐하노라. 천만 가지 좋은 문명과 부강이 일로(一路/돼가는 추세)좇아 생길 터이니 크게 믿고 바람을 얻은 우리가 어찌 기쁘, 어찌 기쁘지 아니하리오.
모든 나라 문명과 부강이 다 일로좇아(이로부터) 생기었고, 미국으로 말하드래도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영국과 싸운 것이 당초에 미국에 있는 인민이 서로 보호하자는 뜻을 가졌음이라. 화성돈(워싱턴)이 혼자 일한 것이 아니라 강한 자나 약한 자나 유식한 자나 무식한 자나 잘난 놈과 못난 몸(놈)을 물론하고 일체로 공합하여 힘쓴 고로 영국을 물리치고 독립이 되어 부강을 일으키고 또한 오늘까지 그 문명과 부강을 부지하고 진보하는 것도, 또한 서로 보호하자는 뜻으로 합심 합력함이라.
우리가 가령 한 가지를 가지고 생각하드래도 이 나라 학업이 날로 왕성하는 것을 우리가 넉〃히 보는 바에, 처〃에 허다한 소학 중학 대학교를 갖추 설립하였으니 이같이 많은 학교를 세운 것이 어느 한 대통령이나 한 부자가 세웠느냐, 아니라. 다 합력하여 되었고 이밖에 적고 큰 모든 일이 다 여러 사람의 힘을 합함으로 되었나니 그같이 합하는 뜻은 서로 보전하자는 까닭이 아니냐.
우리나라에서 여러 해 전부터 문명과 부강을 말하고 좋아하고 배우고저 하였으되 그 가지와 잎은 탐하나 그 뿌리를 구하여 심으지 아니함으로 문명과 부강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부패하였으되, 지금 미국에 온 형제들이 다행이 생각이 바로 나서 문명 부강에 씨가 되고 뿌리 되는 우리 협회가 조직된 지 일 년 동안에 많은 효험을 보았으니 일로인하여(이로 말미암아) 문명과 부강에 가지와 잎이 번성하며 과실이 있을 줄을 확실이 믿는 배라.>
오늘부터 더욱 맹세하고 모든 사의(私意/사심)와 핑계를 바리고 다만 우리의 심은 씨가 잘 자라고 속히 잘 자라도록 힘쓰자 하니 모든 회원이 일시에 고장(鼓掌/박수)하더라.
함께 보기:
가) 공립협회에서는 애국가를 적어도 1906년부터
위 기사 특보/별보의 첫 꼭지로, 공립협회 창립 1주년 기념행사에서 회원 세 명이 애국가를 불렀다고 하면서 후렴을 올렸다. 후렴만 올렸지만, 공립협회에선 아마도 바로 이 무렵부터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한 걸로 보인다. 관련 내용을 캡처했다.
△공립신보 1906년 4월 14일 자 5면 1단 특보/별보∥이미지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검색어: 지나간 사월 오일/연속간행물 공립신보☜)
지나간 사월 오일 공립협회 창립한 날인고로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김관유 이원길 이석원 삼 씨가 애국가를 부르니 애국가에 대지(대지와 듸지 혼용/大志/큰 뜻/요지)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하였고…
나) 공립신보의 애국가 1~4절 전문과 태극기 그림 및 태극문양
가)의 애국가 가사 1~4절 전문과 태극기 그림 및 태극문양이 실려있는 공립신보 1908년 3월 11일 자 2면 1단을 캡처했다. 경축 건원절, 즉 융희황제(순종) 탄신일을 축하하고 또한 독립을 기원한다. '개국 사백팔십삼 년 이월 초파일…'로 시작된다.
윤치호 작사설의 협성회 무궁화가와 비슷한 가사 그대로이며, 이 애국가로 미루어 안창호가 1907년 3~4월쯤 개사한 애국가는 아직은 협회에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오백 년을 오천 년, 황실을 민족으로 등등 고쳐본 흔적이 있다.
태극기 그림 둘 중 하나는 오늘날의 것과 거의 같고, 다른 하나는 괘가 하나만 있어 매우 특이하다. 태극문양은 1907년 11월 8일 자부터 논설 별보 외 기타 주요기사의 머리표시로도 사용했다. 태극기를 또 약간 다르게 도안한 이미지도 함께 올린다.
△공립신보 1908년 3월 11일 자 2면 1단 애국가|경축 건원절∥이미지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검색어: 애국가/연속간행물 공립신보 1번☜)
#고쳐본 흔적: 오백→오쳔, 황실→민족, 길이→길히, 깁허→깁헤, 맘→마옴
(경축 건원절 개국 사백팔십삼 년 이월 초파일…) 폐하 성수는 만세무강 하옵시며 중흥 대업은 불일 건립 하옵소서 공립협회|황제폐하성수만세 대한제국독립만세 대한신민자유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애국가
1. 성자 신손 오백 년은 우리 황실이오, 산고 수려 동반도는 우리 본국일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 충군하는 열성 의기 북악같이 높고, 애국하는 일편단심 동해같이 깊어
3. 천만인의 오직 한맘 나라 사랑하여, 사농공상 귀천 없이 직분만 다하세
4. 우리나라 우리 황실 황천이 도우사, 만민공락 만~세에 태평 독립하세
△왼쪽, 공립신보 1908년 1월 8일 자 1면 1단 祝賀新年…#위 3월 11일 자 애국가 태극기와 동일∥오른쪽, 공립신보 1909년 1월 6일 자 2면 1단 청국 정계…#지금의 태극기와는 태극이 도는 방향만 같고, 머리·꼬리 위치 및 건·곤·감·이 4괘 위치가 다르다.∥이미지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형태별 연속간행물)
다) 작자 미상의 애국가 하나/가장 오래된 원전 추정
절의 구성, 어휘 등이 오늘날의 애국가와 상당히 비슷하다. 1903년에 나온 필사본 고서 '기설(畿說)'에 수록돼 있다고 하며, 작자는 미상이라고 한다.
애국충성가
1. 동해수와 백두산에 해 돋고 달 뜨니, 신민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에서 길이 충성하세
2. 남산수와 청송죽은 절개도 높으나, 풍우상로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 춘하추동 사계절은 분명코 밝으니, 일편단심 충국성은 우리 가슴일세
4. 천지신민 충성심은 다할 길 넓으네, 자나 깨나 애국심은 우리 황제일세
○1903년 기록 기설(畿說)에 수록된 애국충성가(愛國忠誠歌) 관련 경향신문 기사
2012.01.16(월)
수오몽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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