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21]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21회) △평양 대성학교 학생들과 교사(校舍)∥이미지 출처: 도산 안창호 온라인 기념관(전시관-청년 시절과 신민회 활동/사진 하단 영문 메모 중앙부: Daisung Academy 아랫줄 좌우: Pyungyang Korea)∥도산 안창호는 당시 학교가 관찰부동에 있다고 하였다. 관찰부동은 관찰부(觀察府) 즉 감영(監營.. 몽생지몽 2012.12.15
[연재20]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20회) △왼쪽-연광정은 고구려가 6C 중엽 평양성을 세우면서 처음 세웠고, 1111년 다시 세울 때는 산수정으로 이름을 했었다. 사진은 1931년에 총독부가 발행한 조선고적도보 11(朝鮮古蹟圖譜 十一)에 실려있다. 1920년대에 공원을 조성하며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흔히들 오인하여 연.. 몽생지몽 2012.11.30
[연재19]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19회) △연해주지역 해삼위, 블라디보스토크 첫 한인 거주지역 구 개척리 일대 오늘날의 모습∥현재의 포크라니치나야 거리 1번지로부터 '둔덕마퇴'라 부르던 아무르 만에 접해 있는 남쪽 언덕과 '웅덩마퇴'라 부르던 그 아래 저지대 일대가 카레이스카야 슬라보드카(한인 거주지)라 불리던 개척리 마을이 있던 곳이다. 1911년 5월 러시아 당국은 콜레라예방을 이유로 마을을 폐쇄하고 한인들을 모두 신한촌으로 이주시켜 기병대의 주둔지로 삼았다. 이후 이곳은 '구 개척리'라고 했고, 교외의 새로 형성된 신한촌은 '신 개척리'라고 했다. 이곳 구 개척리는 을사늑약 이후 경술국치 전후로 신채호 장지연 이강(이정래) 홍범도 유인석 등 저명한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의 주요 거점이었다.∥이미지 출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정.. 몽생지몽 2012.10.31
[연재18]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18회) 표정이 어두워진 재명은 고개를 수그리며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우리의 대적은 일본인데…그러나 사실은…우리 민족 내부에 똬리 틀어 들앉은 우리 내부의 적이 더 큰 문제…이런 현실이…괴롭고…피곤하고…그렇습니다…" "…자네가 생각이 깊구나…그래…결국은 우리 동포.. 몽생지몽 2012.10.24
[연재17]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17회) △1908(좌/1907 측도) 및 1926(우/1921 측도) 지도로 보는 이재명 의사 의거 당시 남대문정거장과 제중원(세브란스병원/타원 속 건물 셋 추정)/숭례문 앞 청색 점은 일제가 1907년 10월 성곽을 훼손하며 메워버린 '남지'가 있던 자리∥경인선 최초의 시발역 노량진역 이후, 서울 최초의 철도.. 몽생지몽 2012.08.19
[연재16]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16회) 제2부 귀국 후 거사준비 △사진을 합성한 포스터(?)로 보이는 '1900년대 하와이 이민선'이다. 왼쪽 아래로 흰옷을 입은 한국인 이민자 한 사람이 몹시 피곤한 듯 무릎을 감싼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애처롭게 보인다. 그냥 짐 더미일 수도 있는데 별생각을 다 해본다. .. 몽생지몽 2012.06.18
[연재15]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15회) 재명은 일요일(6일)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교우들 앞에 아쉬운 작별을 고함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생활을 모두 마무리했다. 1년 6개월이었다. 학업을 중단한 게 조금은 아쉽지만, 미련은 없다. 조국의 처참한 현실은, 학업이 문제가 아니었다. 재명은 지방회관에서 열린 환송회.. 몽생지몽 2012.05.14
[연재14]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14회) 귀국 예정일이 며칠 남지 않은 10월 초 어느 날 늦은 밤이었다. 설거지에 청소까지 끝낸 재명은 찬관주인 동포 내외와 인사를 마치고 문을 나섰다. 별꽃이 흐드러진 밤하늘을 한번 쳐다본 후, 집을 향해 막 발을 떼는 순간 누군가 그를 불러 세웠다. "이보게 재명이…" 저만치, 옆 건물.. 몽생지몽 2012.05.04
[연재13]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13회) 김병록은 같은 로스앤젤레스지방 회원이다. 통상의 월례회는 물론 어떤 모임이든 꼬박꼬박 함께 참석하고 교회까지 함께 다닐 정도로 아주 가까운 사이이긴 하지만 서로 늘 바쁜 탓인지 이렇게 서로의 집으로 찾아와 만나기는 또 매우 드문 일이다. "뭐 하고 있어? 일도 안 나갔다며.. 몽생지몽 2012.05.01
[연재12]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12회) 이토히로부미, 기실 특사단 일행이 장도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헐버트가 러시아영사와 프랑스영사를 따로 만나 두 나라 정부에 한국특사 알선을 청하자 프랑스영사는 우행이라며 거절했고, 통감부에 밀고까지 해버렸다. '일찌감치 먹어 치울 수 있었던 .. 몽생지몽 2012.04.29
[연재11]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11회) 그리하여 우리는 2년 뒤 만국평화회의 측이 1907년 4월 8일 발송한 초청장을 받게 된다. 을사늑약의 부당성과 분통 터지는 일본의 온갖 불법행위를 만천하에 호소해 국제사회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런 기회는 다시없을 터였다. 헐버트는 초청장 이전에 벌써 광무.. 몽생지몽 2012.04.24
[연재10]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10회) 안창호와 이강(이정래), 그리고 임준기였다. 이 무렵의 안창호는 협회 총회장에서 물러나 총회 사법 겸 학무담당이었고, 이강은 총회 구제위원 겸 리버사이드지방회 회장, 임준기는 로스앤젤레스지방회 서기였다. 친목회 시절부터 함께한 사이다. 지난해 말부터 논의하기 시작한 가.. 몽생지몽 2012.04.20
[연재09]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9회) 공립협회의 궁극적인 목표 1904년 2월 러일전쟁 발발과 동시에 한일의정서가 강제로 체결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운동이 다시 일기 시작했다. 을사늑약 이후엔 더욱 확산, 적게는 10여 명부터 많게는 3,000여 명에 달하는 의병부대가 조직돼 본격적인 대일본 전쟁을 시작했다. 그렇게 .. 몽생지몽 2012.04.15
[연재08]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8회) 먼저 1905년 12월, 리버사이드 동포 한 명이 자전거로 철로를 지나다 전차에 치여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전차회사는 즉시 병원으로 보내 치료를 받게 했으나 생사를 가늠할 수 없었고 사건담당자는 자초지종을 일본영사에게 보고하려 했다. 대한제국은 외교권이 없으므로 재.. 몽생지몽 2012.04.10
[연재07]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7회) 생각이 깊어지면 습관적인 자세다. 양주은은 또 팔짱을 끼고서 고개를 흔들어 여덟 팔자를 그린다. 그러다가 안창호가 그를 향하자 고개를 바로 하고 팔짱을 풀었다. "부끄럽습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귀국하려고만 했으니…이제부터라도 심기일전해서 동포들이 하나가 되게 하는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겠습니다." 안창호가 양주은의 두 손을 꽉 잡았다. "고맙습니다, 고맙고요. 우리가 시방 당장은 먹고살기 급급해서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지만…예…불원장래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차근차근 한번 해봅시다." 안창호의 말 마디마디, 하나라도 놓칠세라 숨죽여 듣는 수길의 두 눈은 마치 부삽으로 숯을 한가득 떠 넣은 듯 이글거리고 있었다. 태어난 곳은 아니었지만 살면서 정든 고향 평양성을 피로 적신.. 몽생지몽 2012.04.01
[연재06]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6회) 안창호의 집은 파차파 애비뉴(현 커머스 애비뉴)에 있는 리버사이드지방회 공립관에서 한 블록쯤 거리, 역에서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몇 달 전, 오렌지농장을 가진 한 미국인 집에 머무르며 집사로 일하다가 공립협회 규모가 커지면서 할 일이 많아지자, 집사 일을 더는 감당하기 어.. 몽생지몽 2012.01.16
말이 부러웠던 당나귀(리메이크) 귀리 보리 당근에 옥수수 등등 먹을거리 풍족하고 보살핌을 잘 받는 장군의 말이 늘 부러웠던 당나귀가 투덜거렸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내게 돌아오는 건 지푸라기뿐…더러운 놈의 세상…" 그러던 어느 날 전쟁이 터져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중무장한 장군을 태우고 동서남북 .. 몽생우화 2012.01.07
단감과 모과와 석류와 탱자(리메이크) 어느 날이었다. 김 선달네 앞마당에 소란이 일었다. 단감나무, 모과나무, 석류나무가 제각기 자신의 열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격렬한 토론 중에 열매들이 떨어져 장독까지 하나 깨졌다. 보다 못한 탱자나무가 입을 열었다. "이보게 친구들, 장독까지 깨졌네. 우리 이제 싸움은 그만두세." .. 몽생우화 2012.01.06
[연재05]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5회) "이민선 탈 때 농장주가 미리 대줬던 그놈의 100달러…아시다시피 저는 모은 돈은 별로 없어도 이렇게 새로 시작하는데…저보다 1년 이상 먼저 오셔서 빚진 돈이야 진작 갚으셨고 술도 궐련도 전혀 안 하시니까 여유는 좀 있잖습니까…형님도 그냥 여기서 어떻게 더 버텨보시면…전.. 몽생지몽 2012.01.05
아, 어머니! 아이고, 여보!/공무도하(1909) 연재일기 <한(韓)민족 우리는 한(恨)민족 단군 이래 우리는 늘, 쫓기며 살아왔고, 뜯기며 살아왔고, 굶주리며 살아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늘 울면서 살아왔다. 태평성대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나 대체로 그래 왔다. 안녕하냐, 그러니까 간밤에 아무 탈 없이 편안했느냐고 묻는 게 인사다. 밥은 먹.. 몽생연필 2012.01.05
나무처럼(오세영 선생 詩碑) 나무처럼 오세영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가지와 가지가 손목을 잡고 긴 추위를 견디어 내듯 나무가 맑은 하늘을 우러러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잎과 잎들이 가슴을 열고 고운 햇살을 받아 안듯 나무가 비바람 속에서 크듯 우리도 그렇게 클 일이다 .. 몽생연필 2012.01.01
[연재04]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4회) △1900년대 당시 하와이의 오아후 섬 남쪽 와이파후에서 북쪽 와이알루아로 가는 오아후철도 협궤열차∥1902년 12월 22일 인천항(제물포항)을 떠난 첫 번째 하와이 노동이민자 121명은 일본에서 신체검사를 두 차례 받고(나가사키와 고베) 19명이 탈락했다. 그리하여 통역관 1명을 포함한.. 몽생지몽 2011.12.31
[연재03]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3회) 처음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른 현실에 나락에라도 빠진 듯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던 수길은 1905년 12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하와이 이민은 중단되고 먼저 온 사람들 본토 이주가 서서히 늘면서 귀국하는 사람까지 생길 무렵이었다. 해가 설핏해진 느지막한 오후였다. .. 몽생지몽 2011.11.19
[연재02]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2회) 두런거리던 소리 끝에 사립문 밀치는 소리가 났고, 저벅저벅 구둣발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마루 앞에 멈췄다. 그가 방문을 열고 문고리를 잡은 채 밖을 내다봤다. "뉘시오?" "접니다. 다녀왔습니다." 마루 아래 댓돌을 살피던 사내가 대답한다. 아들이다. "아이고, 놀래라." "방안에….. 몽생지몽 2011.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