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지몽

[연재14]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수오몽생 2012. 5. 4. 02:48

(14회)

 

귀국 예정일이 며칠 남지 않은 10월 초 어느 날 늦은 밤이었다. 설거지에 청소까지 끝낸 재명은 찬관주인 동포 내외와 인사를 마치고 문을 나섰다. 별꽃이 흐드러진 밤하늘을 한번 쳐다본 후, 집을 향해 막 발을 떼는 순간 누군가 그를 불러 세웠다.

 

"이보게 재명이…"

 

저만치, 옆 건물 출입구 계단 쪽이다.

 

"누구…아니, 어르신!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음, 그래. 내 자넬 따로 보고 싶어서 조금 전에 다시 왔네."

 

일찌거니 와서 식사하고 갔던 중노인쯤 된 동포였다. 여기 얼굴 내민 지는 일 년이 넘었는데도 그를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는 공립협회 회원도 아니면서 간간이 회관에 들러 과일 상자나 금일봉을 놓고 간다. 교회에도 마찬가지다.

 

"저기, 저 앞에 공원으로 좀 가세."

"시간도 늦었고, 저의 집으로 가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저 혼잔데…"

"아니야. 그냥 따라와 봐."

 

컴컴한 공원, 낮이라면야 사람 구경 제법 할 텐데 쏟아지는 별빛에 나무 그림자뿐 사위는 조용하다. 앞장서 걸으며 아무 말이 없던 그는 공원에 들어서자 들고왔던 조그맣고 허름한 보퉁이 하나를 벤치 위에 올려놓고 그제야 재명을 돌아다봤다.

 

"자네 소식 들었네. 조만간 귀국한다고."

"그렇습니다만…"

 

그리고는 또 말이 없다. 재명은 기다렸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시나브로 넘쳐흐른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겁고 느릿한 동작으로 그가 다시 재명을 향했다.

 

"그래…그래서 자넬 만나려고…지켜봐 왔고…자네 마음 알겠고…저지난달 자네가 우리 동포 세 명이…일본놈 떼거리하고 치고받고 하는 걸 보고 쫓아가서…혼자서 떼거리를 해치웠단 얘기도 들었어…듣자하니 굉장히 날래고 기운이 장사라더군."

 

재명인 사실 어렸을 때, 마을 청년들이 대동강 변에서 이웃 마을 청년들과 벌이는 석전희(石戰戱/편싸움)를 겁도 없이 따라다녔었고, 그러다 조금 더 커서는 날파람(평양택견)을 익혔으며, 윤 도사 집 사환 때는 윤 도사 어깨너머 권법까지 했었다.


<윤 도사의 도사는 도를 닦아 경지에 이른 사람 道士일 수도 있으나, 성씨를 붙여 도사라 이르면 1882년(고종 19) 폐지된 종오품 都事로 봐야 한다. 조선 시대 都事는 각 도의 관찰사(감사)를 보좌하거나,금부 등에 소속되어 관리의 감찰 등을 맡아보던 벼슬이었다. 윤 도사는 전 도사, '관찰사보좌관'을 지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의 사진첩(1885~1900)에 들어있는어린이의 택견 시연 모습, 배경으로 보아 어딘가 사진관(?) 등에서 연출된 모습으로 추정된다.∥이미지 출처: 한국기독교회사▷자유게시판 58번▷아펜젤러 선교사의 사진 19☜/사진 아래 영문 메모: Korean boys wrestling(한국 소년들의 레슬링).∥wrestling은 씨름 격투 각희(角戱) 외 각희(脚戱)로도 번역할 수 있으며, '발로 품(品) 자를 밟으면서 몸을 유연하게 움직이며 팔을 상하좌우로 흔들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상대방을 공격하는 우리의 전통 무예 각희(脚戱)', 즉 택견의 의미로 메모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명은 멋쩍어하면서 어렸을 적 얘기를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 중노인은 어둠 속에서도 쉬 알아보리만치 만면 가득 미소를 띠며 재명의 팔을 가볍게 쳤다.

 

"역시 그랬구나…자, 이건 무예(武藝) 이십사반(二十四般) 도보통지(圖譜通志)하고 그 언해본(諺解本)일세. 내가 전에 입던 군복도 한 벌 들어있네."



△무예도보통지 4권 4책과 언해본 1권 1책∥정조(1752~1800)의 명으로, 이덕무(1741~1793)는 앞 시대의 병서를 검토하고(자료조사), 박제가(1750~1815)는 각종 무예의 원리를 정리하고(편집), 백동수(1743~1816)는 문헌기록을 일일이 시범으로 고증했다(실기검토). 도보의 그림은, 정조가 자신의 문집 '홍재전서'에서 김홍도의 그림솜씨를 칭찬하며 '이로부터 무릇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홍도를 시켜 주관케 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1790년(정조 14) 간행됐다.∥이미지 출처: Daum EBS 지식-영상 무예도보통지-제1부 무의 시대



무예도보통지 언해 표지본문∥1790년(정조 14) 이덕무(李德懋, 1741~1793)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 간행한 무예 훈련 교범의 언해서 1책∥이미지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한국역사정보 검색어: 무예도보)

 

얘기로만 듣던 무예도보통지, 보퉁이를 내밀며 그가 하는 말에 재명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결에 보퉁이를 받아들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재명에게 그가 말을 이었다.

 

"청은 술(術)을 말하고 일본은 도(道)를 얘기하네…우 예(藝)라고 하지…우리의 무예 속엔 울타리가 없어…궁극적인 이치야…무예의 시작은…애들이 말다툼하다 쌈으로 번져 주먹을 휘두르면 곧 권법이 되고, 막대를 휘두르면 곧 각투(角鬪) 혹은 창검 봉이 되고, 치고 차고 잡아채고 밀쳐서 넘어뜨리려고 한다면, 또 그것이 발전해서, 수박희(手搏戱/택견)라든가 씨름이 되고…이를테면 그렇게 말할 수 있고…"

 

<각투는 원래 수박희(=각희/택견)와 함께 조선 초기에 성행, 막대(挺/정, 곤봉)로 서로 싸워 승부를 냈으며, 나중에는 격투(格鬪) 및 각축(角逐)의 의미로도 쓰였다.>

 

재명은 숨이 멎는 듯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중노인의 얘기는 계속됐다.

 

"그 무예통지 속에는 명나라 이여송 제독검에 왜식 왜검까지 들어있네. 지피지기에 더하여 부족함을 채워서 완성한다…그런 의미가 되겠지. 물론 지금 시대의 전쟁엔 별로 쓸모가 없긴 하네만…총이나 대포나 병선만이 다가 아니네…급작스레 적과 직접 부딪쳐 단병전을 벌이게 되면…그래서 얘긴 또…달라질 수밖에 없고…권법에 곤봉, 예도(단도/조선세법)만 잘 연마해도…예도 편에 들어있는 도검 만드는 단련법도 눈여겨보도록 하고…별도로 적어 넣어둔 달리면서 호흡하고 비약하는 법과 운보법(運步法) 호보(虎步)도…크게 도움이 될 걸세…그리고…가만있자…이건…"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봉투를 하나 꺼내 들었다.

 

"내가 시방 신병을 앓고 있어 함께 하진 못하고…약소한 금액이라 미안하네."

"여비는 충분합니다. 어르신…이러시면 안 됩니다. 몸도 안 좋으시다면서요."

"받아 주시게…자네가 아니라…조국을 향한 나의 간절한 염원일세…"

 

뭉클해진 재명은 숨이 거칠어지고 말까지 더듬댔다.

 

"어르신…어르신…함자는 어떻게 되시온지…"

"내 이름은…무명씨, 무명씨라고만 해 두세…"

 

그는 또, 계급은 말해주지 않고 '친위대(궁궐수비대)' 출신이라고만 했다. 무예도보통지를 불태워 없애라는 일본인 교관을 때려눕히고 도망쳐서, 이리저리 떠돌다가 멀리 여기까지 흘러왔다고만 했다. 바래다주려 하는 재명을 한사코 거절하고 휘적휘적 멀어져갔다. 구부정한 어깨 애써 곧게 펴며, 그렇게 어둠 속을 사라져갔다.

 

(계속)

 

2012.05.04(금)

수오몽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