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재명은 일요일(6일)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교우들 앞에 아쉬운 작별을 고함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생활을 모두 마무리했다. 1년 6개월이었다. 학업을 중단한 게 조금은 아쉽지만, 미련은 없다. 조국의 처참한 현실은, 학업이 문제가 아니었다.
재명은 지방회관에서 열린 환송회에 참석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7일) 아침 샌프란시스코를 향했다. 무명씨 어르신을 뵙고 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침 일찍 환송을 나와 주었다. 말없이 고개 숙인 재명, 어르신도 말없이 악수만을 청했다.
△1900년대 당시 샌프란시스코 거리와 항구의 모습∥이미지 출처: ☞역사복원신문
재명이 샌프란시스코 화륜차정거장(기차역)에 도착하여 플랫폼에 내리자 임치정 이교담 양주은 등 세 사람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8일).
"아이고, 형님들. 금방 들어가면 뵐 텐데 뭐 하러 이렇게…"
"글쎄 말이야. 주은이 이 사람 등쌀에 말이야. 흐아하, 아하하…"
임치정이 양주은을 가리키며 껄껄 웃었다.
"어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자네, 그 짐들 이리 주고."
"왜 이러십니까, 형님…에, 참…형님들 왜 이러세요…"
양주은 등은 기어이 궤짝 같은 트렁크 하나와 손가방 짐을 앗아 들었다. 공립관에 도착하자 협회 임원들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강(이정래) 뒤를 이은 이재명의 공식 출정 하루 전날 아닌가. 여러 가지, 함께 점검하고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재명의 임무는 또 다르다. 도적의 수괴와 매국 역적을 직접 처단한다. 서두르면 실패한다.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역부족, 협회와는 별개로 임무만을 위한 새로운 동지를 모아야만 한다. 너무 많아도 안 된다. 20명 내외가 적당하다.
동지규합은 신민회 외곽 조직을 활용하고, 도적 떼 우두머리 제거에 동참할 것을 권하여 장려하고, 역적 도당 처단에 동참할 것을 권하여 장려하고, 그리하여 국권 회복운동에 함께 앞장설 것을 권하여 장려하는…그래, 권장회(勸奬會)를 만들자.
육혈포 비수 등 무기류는 국내서도 조달 가능, 권장회를 결성한 다음에 추진해야 원만하다. 자금조달 무기조달 정보수집 처단실행, 4개 조를 편성한다.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을 시 공립협회 지원금으로 충당한다. 모든 연락은 대한매일신보사로.
점검은 끝났다. 주기적으로 국내 반입하는 공립신보 뭉치와 안창호 등한테 보내는 편지 외 기타 물건을 트렁크에 챙겼다. 협회 회원들이 모금하여 대한매일신보사에 보내는 국채보상운동 헌금까지 깊숙이 챙겨 넣었다. 따로 주는 여비는 사양했다.
재명은 뱃삯의 절반이 훌쩍 넘는 큰 금액을 봉투에 담아주신 무명씨 어르신 얘기를 털어놓았고, 그동안 벌어 모은 돈이면 당분간은 생활비도 걱정 없다는 얘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내일 아침 배만 타면 된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양주은이 재명을 따로 불렀다.
"회자정리(會者定離)는 맞는 말 같긴 한데…거자일소(去者日疏)라니…이건 암만 생각해도 틀린 말일세…내 어찌 자넬 잊을 수 있겠나…"
"형님…다시 돌아옵니다…반드시…"
양주은은 진작부터 감상에 빠져있었다.
"중차대한 임무로 귀국하는 자네에게 사사로운 부탁이라 미안하네만…시간 되면 잠깐 개성 우리 집 좀 들러 주소…잘 있다고 안부 좀 전해 주고…이거 받아 넣게."
심부름 값이라 우겨대는 양주은의 호의를 재명은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하와이를 떠나기 직전 각자 독사진으로 찍었던 기념사진도 지갑에서 꺼내어 교환해 가졌다.
△공립신보 1907년 10월 18일 자 2면 4단∥동포귀국 이재명…이달 9일 시베리아 선편…∥이미지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형태별 연속간행물)
재명은 다음날(9일) 아침, 어제 낮의 마중처럼 임치정 이교담 양주은 등의 배웅을 받으며 다른 한 동포 정정근과 함께 태평양을 오가는 여객·상선 시베리아 선편에 몸을 실었다. 임치정과 이교담이야 금세 서울에서 다시 만날 터이지만, 생과 사를 도외시한 필사임무에, 양주은은 사실상 기약이 없었다.
(계속)
2012.05.14(월)
수오몽생
'몽생지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재17]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0) | 2012.08.19 |
---|---|
[연재16]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2) | 2012.06.18 |
[연재14]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0) | 2012.05.04 |
[연재13]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0) | 2012.05.01 |
[연재12] 대한의사 이재명군(부제: 공무도하 1909) (0) | 2012.04.29 |